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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불량 부부라뇨, 자유 부부예요
[중앙일보 2005.11.10 16: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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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훈범.권혁재] 검은 가죽 재킷과 가죽 바지, 가죽 장갑, 롱부츠, 검은 헬멧과 선글라스…. 검은색과 가죽으로 일습을 갖춘 모양새가 영락없는 할리우드 영화 속 폭주족이다."오토바이에서 30m만 떨어져도 꼭 미친놈 같죠."스스로도 행색이 남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 멋쩍게 웃는다. 뭐,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폼'나는 구석도 있다. 그런데 똑같은 복장에 덩치만 조금 작은 그의 동료는 좀 이상하다. 헬멧을 벗으니 '여자'다. 둘이 부부란다. 류승현(42).정혜중(38)씨 부부다.

여자가 오토바이를 타는 예도 흔치 않지만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비싼 가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커다란 차체 탓이다. 한국에서 20명도 안 된단다. 할리 타는 부부는 더 드물다. 이 부부는 열 쌍도 채 안 되는 희귀한 경우다.

3년 전만 해도 이 부부 모습이 이렇지 않았다. 승현씨는 그저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광고회사와 레저회사, 보험회사로 옮겨가며 10년 넘게 남이 주는 월급을 받았다. 늘 짧은 머리에 싱글 정장, 하얀 와이셔츠, 보수적 스타일의 넥타이를 맸다. 문자 그대로 모범생, 모범시민이었다.

그런데 월드컵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였을까. 2002년 승현씨의 숨겨진 불량기와 반항기가 터져 나왔다.

"그동안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거든요. 근데 마흔이 되면서 틀에 박힌 삶이 속박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말했지요."그게 오토바이였다. 화들짝 놀란 혜중씨는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려는 남편을 극구 말렸다. 아니, 이이가… 오토바이의 오자도 모르는 사람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달을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승현씨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1500만원을 주고 중고 할리를 한 대 샀다. 할리와 함께 엄청난 변화가 따라왔다. 머리가 길어지고 귀고리가 걸렸으며 머리엔 두건이 씌워졌다. 그런 변화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다. 당장 세 아이가 그랬다. "깡패 같다" "무섭다"며 아빠를 피했다. 하지만 얻은 것이 더 컸다.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훨씬 넓어지고 사고의 폭도 그만큼 커졌다.

"전에는 어딜 가더라도 자연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오토바이를 타면서부터는 자연을 관조하고 느끼게 되더라고요."달리면서 몸으로 받는 바람처럼 자연이 가슴속으로 파고들더란다. 하루하루 밝아지는 남편의 표정을 신기해하며 혜중씨도 남편의 등 뒤에 올라탔다. 그러고 일 년 반 뒤에는 자기 것도 사달라고 남편을 졸랐다.

"오토바이를 타면서 남편을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남자들이 바깥일에 대해서는 말을 잘 안 하잖아요. 함께 달리니 동료처럼 느껴지나 봐요. 대화도 더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이들이 현재 타는 할리는 두 대 합쳐 5000만원이 넘는 고가품이다. 게다가 할리 매니어들을 미치게 만드는 엇박자의 요란한 엔진음은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이 부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시동을 끄고 들어가요. 사실 엔진 소리가 좀 시끄럽거든요."거리에서 만나는 오토바이는 이들의 것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택배용이 대부분이지만 결코 그들을 추월하는 법이 없다. 자동차 사이를 요리조리 얌체처럼 빠져나가지도 않는다. 과속도 하지 않고 그저 시속 70~80㎞ 정도로 차분하게 달린다.

"그래도 시선을 끄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별로 신경 안 써요. 남들에게 과시하려고 타는 게 아니니까요."승현씨는 할리를 타면서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능력의 80% 이상을 발휘하기 어려웠는데 자기 일을 하다 보니 100%를 모조리 뽑아내게 되더란다. 오토바이가 숨겨진 능력 20%를 되찾게 해 준 셈이다. 이들 부부는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오토바이로 함께 전국일주를 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 아이들도 요즘은 오토바이 타는 아빠.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

"오토바이를 타면서 가장 좋은 점요? 자유죠." 부부의 입에서 같은 대답이 터져나왔다.

글=이훈범 기자 cielbleu@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이훈범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cielbleu3/- '나와 세상이 통하는 곳'ⓒ 중앙일보 & Joins.com
Posted by 夢現 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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